「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32. 김승광(이향형 처)
본래 극도로 가난하여 성문에 이바지함에 계교함이 없더니 하루는 나가 뵙고자 할 새 행장 속에 다만 참외 2개만 있음이라. 성사님께 올려 드리고자 나루에 도착하여 주머니를 열어 보니 뱃삯이 한 푼도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뱃사공한테 하였더니, 사공이 그 성의에 감동해서 “가히 어찌할 수가 없다” 하고 태워 건네주어서 비록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뜻한 대로 올려드리니라.
항상 가난하여 능히 받들지 못함에 죄송한 마음으로 어느 날 와서 뵈올 때에 날씨도 춥고 옷도 다 해지어 몹시 추운지라. 성사께옵서 보시고 명하시어 치마와 신발을 주게 하시거늘, 승광이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였고 이후로 어른 시봉하는 책임을 지더니 그때 안성광, 조초광과 함께 그 일을 맡은 지라.
하루는 성사께옵서 세 사람을 불러 하교하시기를 “성광과 초광은 비유컨대 기와집이 기둥이 가늘어 능히 지탱하지 못함과 같고, 승광은 밖으로는 미약한 것 같지마는 끝내 좋은 때를 볼 사람은 필시 승광이라” 하시다.
갑술년(개도61년 1934년) 강연회를 해산할 때에 성사님께 들으시고 깊이 우려하시사 존안에 밝은 기색이 없으신지라.
승광이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고 앞에 나가 위로해 말씀드리기를 “심려하지 마옵소서. 어찌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도가 없겠나이까?” 그 후에 존체 미령하시사 임종하심에 미쳐서 승광을 돌아보시고 명하시기를 “승광은 내 집 살림을 잘 보살펴주면 반드시 큰 복을 받으리라” 하시다.
승광이 이러한 명을 받든 이래로 조석으로 심폐에 새겨서 17년이 이르도록 감히 혹시라도 게으름이 없었고, 더욱이 덕택으로 아들이 장가를 들어 며느리가 가문에 들어온 이후로 항시 마음속에 황감함을 갖고서 종신토록 잊지 못함이라.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 > 내, 외편( 內,外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사부모님의 홍은이시라. (0) | 2023.04.01 |
---|---|
계살방생의 교훈을 듣고 (0) | 2023.03.28 |
도를 닦는 것도 이와 같아서 (1) | 2023.03.19 |
네가 만일 잘 닦으면 (0) | 2023.03.09 |
가르치신 은혜를 갚고자 하였으나 (0) | 2023.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