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사변 & 대성경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34 -10
정갑춘(호 월학)이 듣고 도성사부님 성적을 서술하니
신사(1941)년 10월 19일에 왜경 수백여 명이 돌연히 성문에 침입하여 도성사부님 이하 간부 53명을 일제히 검거함에 피속된 자가 45명이요, 기타는 상세하지 않음이라. 당시에 선친(백련)이 보령 경찰서에 유치되시고 나는 조치원 경찰서에 있었다.
개도69(1942)년 30세에 도성사부께서 옥중에 계시면서 가혹한 신문 받으심을 어찌 차마 말하랴!
시를 읊어 스스로 위로하시기를 “찬바람은 벽으로 침입하여 거문고 소리를 짖고 찬 얼음은 창문에 맺혀 그림의 무늬가 되었네! 요샛날 병세가 악화되어 아픔이 가중되어서 잠시라도 자지 못함이 긴 밤이 새벽으로 이어졌네”
하루는 사람으로 인하여 비밀히 명령하시사 “내(호 월학)가 최종래, 유석기, 최승락으로 더불어 몰래 대성경을 2시전 집 마루 아래에 감추었더니 이에 시전이 철거됨을 아시고 다시 대성사모님 성산 오른쪽 산기슭에 굴을 파고서 옮겨 감추라” 하시고 출감하신 후에 저를 부르시어 그간에 사정을 다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대성경이 금이나 옥보다 더욱 중하거늘 어찌 그 지하에 습기를 막겠느냐?”
다시 선친(백련)과 최두근을 명하시어 이중으로 포장해서 우리 집에 감추게 하시고 또한 열위의 성상을 염려하시어 내가 최종래, 유석기, 조인구로 더불어 임시로 유석기 집에 옮겨 편안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