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산(仁月山) 2023. 2. 3. 15:34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6-8 월탄 이창규.

계유년(개도601933) 가을에 일본 관청으로부터 색옷을 입고 늑삭을 장려함이 심히 혹독해서 법령이 아니건마는 법령보다 엄중히 하여 혹 시장에 가면 관리들이 염색하는 물로 어지럽게 뿜어서 상중의 복인도 가리지 않고 강제로 머리를 깎는 것이 극심하여 우리 대도에도 또한 색깔 옷과 단발을 권유함이라.

이때 사모님께서 승하하신 지 7년 되는 해라. 제자의 도리로 중복 삼년을 마치고 흰옷을 입은 채 종신함으로 결심 중이라. 성사께서 백의白衣와 보발保髮을 본래 좋아하시고 신도들도 또한 그러함에 당국의 독촉함이 더욱 심한지라. 부득이하여 경찰 당국과 교섭하기로 결의하여 관장인 오희운을 경질하고 김종갑에게 관장을 맡기니, 대개 교섭 수단이 능란함을 인정함이라.

한쪽으로는 지방 관공서에 교섭하고 또한 경성에 사는 심규환에게도 부탁해서 협조를 교섭하니, 의외에 오희운이 그 관장이 해임됨을 분하게 생각하여, 밖으로 대도를 옹호하는 것같이 하고 안으로는 경찰서장(일본인 죽전)의 탐정이 되어서 대도 상황의 내용을 밀고하여, 김종갑과 심규환이 반대 운동을 하였다고 밀고하여 경찰서로부터 압박함이 혹독해서 종무소의 역직원과 각부 선화사를 호출하여 구금해서 단발을 엄히 명하니, 이같이 창피함을 받음이 2, 3차에 이른지라.

형세가 부득이하여 단발하는데 이르니, 신임 관장인 김종갑도 또한 즉시 사임함에 일반 신자들이 모두 희운의 비행에 원망을 가졌어도 능히 배척하지 못함은 그가 관청과 깊이 맺은 것과 또한 그 동생 희우가 힘이 남다르고 성질이 거칠고 사나운 까닭이라. 그러나 다행히 우리 성사께서는 그 권하고 윽박지르는 말은 당하지 않으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