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독실하게 믿은 영험이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77. 김기현, 남영복
남영복이 청원군 북일면 정북리에 거처하면서 입도를 하고 신행하니라.
경인년(개도77년 1950년) 6. 25사변에 영복이 인민군에게 납치되어 반역도로 죄명을 얻어서 청주 형무소에 갇혔더니, 국군이 수복할 때에 인민군이 최후의 발악으로 감옥에 있는 여러 죄수를 학살하고자 하여 수레에 싣고 사형 장소(명암방죽 언덕에 이를 때에 영복이 또한 그중에 포함된지라.
처음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다가 돌연히 믿는 마음이 발하여 태연자약하게 말하기를 “만고 대성인의 제자로서 어찌 가히 인민군의 학살하는 바가 되리오” 하고 생명을 구출해줄 것을 대성사부모님과 정법사님 전에 심축을 드리니라.
과연 여러 사람의 맨 뒤에 결박당하고 그 결박한 쇠사슬이 저절로 풀리어 사살하는 총소리와 동시에 엎드리니, 인민군이 기관총으로 전부 학살하고 일일이 순시하며 “다 죽었다” 하고 도망하여 달아나거늘, 영복이 정신을 가다듬어 일어나 보니 전후좌우가 모두 시체라.
그때 여러 사람이 모두 죽고 오직 영복만이 홀로 살아났으니, 이것은 성사님께서 잠잠히 도와주신 은혜가 아니겠는가. 귀가하여 사실대로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니 사람들이 모두 듣고 말하기를 “이것은 실상 영복이가 도를 독실하게 믿은 영험이라” 하니 이것은 김기현이 영복에게 들은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