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내, 외편( 內,外編)

중척리 선화부’라 하더라.

인월산(仁月山) 2025. 6. 1. 12:39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 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3-73 임귀곡(오연철 처) 계산 오연창

임귀곡(오연철 처)이 을묘년(개도42년 1915년) 3월에 시동생 오연성(호 취곡)으로 인하여 입도하니라.

그 후에 성사께옵서 녹동에서 조용히 계시는 연고로 각지에 있는 제자들이 능히 나가 뵈옵지 못하고 모두 중척에 이르러 안후를 여쭈오니, 내왕하는 자가 가히 이루 헤아리지 못할지라.

왕래하는 사람들이 연락부절이되 접대함을 한결같이 하여 하나도 어려운 빛이 없고 양식이 떨어지면 빚을 얻어 이어 나가니, 사람들이 모두 이르되 ‘중척리 선화부’라 하더라.

병진년(개도43년 1916년) 3월에 성사께옵서 오연창(호 계산)과 임귀곡 두 사람을 불러 하교하시기를 “내가 들으니 오연성 형수가 청춘에 홀로 되어 근근이 살아감에 내왕하는 도인을 잘 접대한다고 하니 많은 음공을 쌓음이 심히 가상하도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의제 태용과 인연을 맺었으니 두 집에 사돈의 정의가 더욱 좋은 일이라.

의제는 죽고 삶에 괴로움을 함께 할 사람이고 얼마 후에 결혼할 것인데, 수씨와 시숙 간의 정의가 친동기간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 귀곡의 가운이 앞날에 점점 형통할 것이요. 이미 제자가 됨에 윤회에 떨어지지 아니 하리니, 시종이 한결같으면 가히 군자라 이를 것이니라”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