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내, 외편( 內,外編)

청려장을 허터 잡고 중방리 옛 벗을 찾아가니

인월산(仁月山) 2025. 3. 2. 21:14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3-38 청호 임문철

임문철(청호)이 본래 관후하고 공순하고 삼가는 바탕으로 중방리(금천 윗동네) 산마을에 거하며 대인군자를 만나서 돌아가 의지하기를 원하다가, 성사님 도덕의 장엄하심을 듣고 이름을 들여 제자가 되니 곧 신해년(개도38년 1911)이라 성사님께서 포덕을 하시는 초창기인 고로 일컬어 ‘은도의 시기라’  하시니라.

왜정 치하에 세속이 날로 변하여 윤상이 퇴패하여 민생들이 도탄에 빠짐이 날로 심하되,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지성으로 도를 받드니라.

때에 불행이 녹동의 강도 사건으로 사부님께서 한때 중방리에서 잠적하실 새, 매일 사부님을 곁에서 모셔 집 뒤 후원에 토굴을 만들어 앉으실 곳을 설치해서, 밤이면 사부님을 토굴로 모시고 낮이면 뒷산 소나무 숲 아래에서 모시다가, 자주 왜정의 호출을 당하여 무죄로 욕을 받으니라. 이때 내왕하는 동제가 매일 10여명 이상이로되, 위를 받들고 아래를 접함에 한 명도 빠짐없이 여일하게 대우하니 무릇 수십 일이라.

차차 사건이 판명되어 사부님께서 환가 하시고 후에 사택을 금천에 건축할 때에 일은 크고 힘은 적어서 재정이 부족하여 여기저기에서 꾸어오되 마침내 10여만 원에 이름에 종무소에서 갚을 계책은 없고 자꾸자꾸 날만 지나는지라.

마침내 10마지기 이상 농작물과 농사짓는 소와 집안 살림살이를 모두 채권자에게 잡혔으되, 한집안 모든 식구가 끝내 원망하거나 후회함이 없는지라.

성사께옵소서 그 성의를 가상히 여기시어 시가詩歌를 읊어 칭찬하시기를 “청려장을 허터 잡고 중방리 옛 벗을 찾아가니, 금화산 밝은 달 밝은 집에 친구 좋다 청호로다”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