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2-58-2 산봉 최동근
삼 년을 지나 경오년(개도 57년 1930년) 섣달에 동생 상근과 함께 성문에서 물러가고자 배례를 드리고 가덕 산방으로 돌아가 있다가, 을해년(개도 62년 1935년) 2월에 형무직의 책임을 맡게 되어 평양, 경성, 청주 등지에서 전전한 세월이 무릇 16년이라.
매양 여러 가지 사무를 취급함에 ‘형기우무형(刑期于無刑: 형벌에는 형벌이 없는 것으로 기약한다)’ 이라는 다섯 글자를 표방으로 삼고 한결같이 관용을 주장으로 삼아서 지성으로 선도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기쁘게 굴복하여 개과천선이 되었더니, 동근을 지목하여 말하기를 “공자의 말씀에 ‘선생님의 지도하심이 그 마땅함을 얻었다’라고 하였으니, 이 어찌 성문 교화의 크고 넉넉한 은택이 아니시겠는가”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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