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34 -10
정갑춘(호 월학)이 듣고 도성사부님 성적을 서술하니
개도 69(1942)년 9월 16일에 배신자 오희영. 오만균의 모해로써 왜놈 경찰 50여 명이 성역에 침입하여 불상을 파괴하고 영정을 소각하니 그 괴수는 대평리에 거주하는 오승주이더니 며칠 후 신명의 벌을 받아서 급히 죽었다. 도성사부님께서 11월 15일 병보석으로써 출감하셨으나 이듬해 1월 14일에 또 거주제한을 당하시어 조치원 신흥동에서 어려움을 받으시는 중에 왜놈 경찰 무리가 매일 머물러 있으면서 집에 세간 여러 가지 물건을 수송으로 반출해내서 큰댁 가족들도 쫓아내서 조치원으로 나갔고 2월 중순에 사택, 사당 외에 수십 건물 총 160여 칸이 다 철거되었다. 당시 상황을 어찌 이 다 말 하리오, 왜 놈들과 김갑순 외에 기타 관계자는 다 흉악한 도적이 되었다.
개도 71(1944)년 32세 3월 3일에 도성사부님께서 여러 제자로 하여금 굴을 삼태봉 뒤 산기슭에 만들게 하시고 이듬해 3월에 자취를 감추고 화를 피하심에 다른 사람은 잘 알지 못하되 왜놈 경찰들은 추측하여 삼태봉 주변과 밤절 등지를 세밀히 수색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5월경에 충북 오창 장대리 박정단 친우(남편 이중봉) 집에 몰래 행차하시어 7일간 자취를 머무르시고, 낭성면 두문동 최익붕(노하) 집에 다시 행차하시사 자취를 숨기고 도를 안으시다가 7월 7일(양 8월 15일)에 해방을 맞으시어 시를 기쁘게 읊으시니 그 시에 말씀하시기를 ‘두문(개문)동에 금풍(가을바람)이 부니 만물이 의로운 가을을 얻었도다, 기쁜 일이 문 앞에 이르니 스승과 제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봄이로다.’금천으로 돌아오시어 9월 10일에 역직원을 발령하시어 도무를 집행하게 하시니 선친은 총감독이 되시어 사부모님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셨다. 12월 중순에 삼청루 2층과 좌우 교화실을 조성하시니 상층은 10칸이요, 하층은 16칸이며 두 교화실은 18칸이요, 단군성전은 18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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