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102. 청로 김영문
김영문(호 청로)이 일찍이 기묘년(개도66년 1939년) 24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호천망극하여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니라.
이재근(호 후곡)이 와서 말하기를 “이때 만고 대성인께서 출세하시사 덕을 펴시어 널리 중생을 건지시니 그대도 또한 입도하여 도성덕립을 하면 소원을 가히 성취하리라” 하고, 또 말하기를 “대성사부님께옵서 강원도로부터 남쪽으로 옮기실 때 미리 말씀하시기를 ‘제자 인연이 남쪽에 많이 있다’ 하시니 인연이 그대에게 있는지 누가 알리요” 하니라.
영문이 듣고 그렇게 여겨서 곧 입도하고 그 후에 금천에 들어가서 정법사님 교화를 받들고 성심으로 봉행하니, 어느 날 밤 꿈에 한 분의 선인이 왕림하시거늘 자세히 보니 항상 삼청루에서 뵙던 대성사부님이시라.
황송하여 엎드려 고하기를 “이같이 누추한 곳에 존가尊駕가 왕림하시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반기어 영접하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성경지심이 지극한 고로 특별히 와서 보고, 한 가지 부탁할 바가 있으니 네가 능히 지성으로 수도한즉 소원을 가히 이루리니 비록 험난한 일이 있더라도 변치 말고 도를 닦아라” 하시다.
그 후 신사년(개도68년 1941년)에 사변이 발발함에 영문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사부님께서 몽중에 가르치심이 실상 이때를 위한 예훈이시라’ 하여 비록 왜정의 심문을 혹독하게 당하였으나 시말서를 쓰지 아니하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아니할 뜻으로 스스로 심지를 굳게 하다가 을유년 해방에 이르러 비로소 해결됨을 얻었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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