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2-21. 송화용, 방천 송석순, 초한 송태영
송태영(호 초한)의 아버지 석순(호 방천)이 29살에 처음 성사님을 녹동에서 뵈오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석순은 태상노군에 비한다” 하시다.
석순이 기뻐하고 잊지 아니하여 독실하게 믿고 도를 닦아 포교에 전력하여 많은 공적이 있다가 31살에 문득 세상을 버리니, 때에 태영의 나이 겨우 7살이라.
그 조부 승용(사부님께서 華用으로 고쳐 주심)이 항상 손부와 태영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이토암 선생님은 만고 대성인이시니 변치 말고 잘 믿으라” 하니라.
그 후에 태영이 조부의 말을 사부님께 고하기를 “조부가 70살의 노경이라 행보가 어려워 능히 들어와 성사님을 뵈옵지 못합니다” 하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하루에 10리씩 사나흘이면 가히 여기에 이를 것이니 나를 보고 아는 것이 어찌 좋지 않겠느냐?”
태영이 이 말씀을 조부에 고하니, 조부가 번연히 뉘우쳐 깨달아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앉아서 죄를 많이 지었도다” 하고 일어나서 길을 나선지라.
태영이 등에 업고 행하여 하루에 10리 혹 15리를 걸어 사흘 만에 비로소 금천에 다다라 성사님을 뵈오니, 성사께옵서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노인이 먼 길에 이같이 수고한다” 하시고 명하여 편히 앉게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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