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36-3
정운하(호 화촌)이 초당 공사를 다 한 후에 또 문과 다못 사무실을 세우는 중에 밤이 된즉 사부님께서 가무 가르치심을 계속 하옵시더니 10월 19일에 신사(1941)사변이 전게되어 금천은 별안간 암흑천지로 변하였다.
막막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서 사부님 이하 직원들이 다 검거되어 유치장에 계시다는 말씀을 부모님께
고하고 다시 돈이 필요함을 말씀드리니 아버님께서 동네 도인 가정에 순회하시어 1원, 2원을 거둔 금액이 17원이 되었다. 그 돈을 가지고 금천에 와서 도성사모님께 말씀을 드리니
“이곳에서는 별달리 필요하지 않으니 대전에 나가 올리거라” 하시거늘
나가다가 형사에게 체포되어 큰 사랑에 가두고 “이놈 어떠한 정보 연락을 갖고 있느냐?” 하고 손과 발로써 사정없이
사납게 때림에, 말하기를 “우리 사부님께서 옥중에 계셔서 제자의 직분으로 궁금하여 찾아온 것이 무슨 죄가 뇌느냐?
하니 또 때리며 “아직 어린놈이라 오늘은 그냥 돌아가겠으나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보내
주어 나오니 도성사모님께서 기다리시다가 “너 몸을 다치지 아니했느냐?” 하시며 “들어가서 자거라.” 하사
이튿날 일어나니 밥을 주시어 급히 먹고 대전 임시 사무실에 나가 4부 선화사 양재희에게 대금을 전해주니라.
변후경, 최행곡 두 사람이 말하기를 “현재 사부님께서 추우시니 네가 금천에 가서 사모님께 말씀을 올려서 금침을 가져오라” 하며 자전거를 빌려주어 와서 고달하니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를 “서문 밖에서 기다려라” 하시고 몰래 주시어서 받아 싣고서 대전에 도착하니 이미 밤 12시가 되었다.
이튿날부터 심부름하고자 해서 집회하는 곳을 찾아간즉 이미 다 피하신 고로 한갓 며칠을 보내다가 어머님께 소식을
듣고 누차 조치원에 나갔으나 여러 가지 성의를 올리지 못하여 죄송스런 마음이 지금까지 풀리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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