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내, 외편( 內,外編)

충청도 계룡산으로 남천포덕 (3)

인월산(仁月山) 2022. 1. 27. 18:04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일찍이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살 때

 경술년(개도37년 1910년) 3월에 성사께옵서 다시 남쪽으로 옮기실 뜻을 결행하심에 정공이 곧 동행하고자 하여 가산을 방매하여 수천금액을 장만하고 두 집의 가족들이 밤중에 길을 뜨니 모두 20여 인이라.

4월 8일에 비로소 충청도 계룡산 아래 백암동에 당도하여 수 칸 집을 사서 합하여 동거하니, 그때 가옥 매매 흥정과 입택하는 여러 가지 준비는 실로 백남 김도명이 주선한 힘이라.

두서너 달 후에 태용의 처 백씨가 객지 생활이 갈수록 더욱 고통스러움으로 고향에 돌아갈 뜻을 많이 하는 고로, 성사께서 부득이하여 태용에게 곧 아내를 거느리고 고향에 돌아가게 하시더니, 태용이 명을 받들어 길을 떠났다가 경기도 과천에 이르러 백씨가 중도에서 병이 나서 선화 한지라.

그곳 우마장에 매장하고 이들 삼 남매(장녀는 8세, 차녀는 5세, 아들은 2세라)를 데리고 도로 백암동으로 돌아와서 형제처럼 동거하니라.

7월에 정공이 고향에 가서 남아있는 토지를 모두 팔아서 나왔는데 이듬해 신해년(개도 38년 1911년) 정월 15일에 세상을 떠나니, 때에 김시정과 이준명이 힘써 많이 원호하니라.

그 후에 성사께옵서 공암 남산소로 이사 하시고 태용도 태용도 또한 공암 원전마루에 옮겨 살다가 정공(성도존사)을 남산소로 이장하니라.

이 해에 성사께옵서 또 계룡산 황적동으로 이사하시사 제자 수십 인을 얻으시고, 이후로 성문에 종사자가 점점 많아지니라. 임학순이 신명강계서적을 전주 관성묘에서 구입하여 오니라.

(다음 4편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