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87. 추사 양원환
양원환(호 추사)이 본디 성품이 청렴하며 정직하고 의협심이 많아서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줌으로써 이름을 한 향리에 드날린지라.
경술년에 온 나라가 수치를 당한 이후에 마음으로 불평하여 아우들 형환, 이환, 정환과 함께 시골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자식과 조카들에게 힘써 경전을 배우게 하고 신학문을 닦지 아니하게 하여 말하되 “내가 왜놈의 욕됨을 멀리한다” 하더니, 갑인년(개도41년 1914년) 늦은 봄에 비로소 구즉면 녹동 매방산 아래에서 성사님을 뵐 새 여러 제자가 시좌한지라.
들어가 뫼시고 교화를 받자올 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내 도는 다른게 아니라, 도로서 도를 다스리고 인륜으로서 인륜을 밝히고 사람으로서 사람을 가르침이니, 나는 다른 도가 없음이라. 내 도는 삼종일합이니라.” 원환이 말씀드리기를 “유. 불. 선이 각각 문호를 세워 가르침을 베풀었으되 도와 교가 행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삼종일합으로 가르치시나이까?”
말씀하시기를 “도는 본래 한가지이거늘 각각 자기 문호를 세운지라. 세월이 지나고 풍속이 해이해져서 근본은 버리고 말단이 판을 치며 간사한 말이 무성하여, 마치 구름이 해를 가림과 같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신의 덕화를 입지 못하게 하여 악한 일이 날마다 행해지고 겁운이 하늘까지 미치며 큰 난리가 장차 이를 것인데 이 대지 위에 창생들을 어찌할고, 삼교의 법문에 천명이 나에게 있고 그대의 인연이 또한 나에게 있나니, 항하사(갠지스강 모래)와 같은 중생을 무슨 꾀로 잡아당기어 돌이킬고, 내가 장차 신도설교로 천하를 귀의케 하리라” 하시고 하룻밤을 설교하심에 진리가 소소명명 하시고 현묘한 도를 가히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음이라.
이내 ‘추사秋沙로 도호를 명하여 주시고 포교사를 맡겨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생에 환후(장비)요, 이생애서는 원환이라” 하시고 찬양하시다. 이에 물러감을 고하고 돌아와서 김백남과 오계림을 도움의 벗으로 삼고 사부님 명령을 좇아 제도하는 한 가지 일로써 집안일같이 보아 한 대현(초림), 이국제(옥정), 이광재(계월), 양무환(국은), 양익환, 이병성(연태), 윤대현(설림), 우익명, 김경묵(채운), 유동채(취담), 차증태, 박현재 등 수십 명의 동지를 얻어서 불과 수년 만에 옥천, 보은, 청주의 세 고을에 성인의 도가 크게 떨치니라.
무진년(개도55년 1928년) 봄에 가족 모두를 거느리고 회인(본래 보은군 회남면에 거주함)에서 금천으로 이사하여 가깝게 뫼시고 산지라.
갑술년(개도61년 1934년)에 성사께서 승하하실 때에 추사를 돌아보시고 명하시어 큰일로써 부탁하시거늘 “도중 사무를 총관하며 정법사님을 뫼시고 도와서 다시 대도를 창명하게 하라” 하시니 끝까지 변치 않고 도장에서 몸을 마치니라.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 > 내, 외편( 內,外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문을 외워 도를 통달한 자가 (1) | 2023.11.09 |
---|---|
부부의 공덕이 이 같음이여 (0) | 2023.11.07 |
도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니라 (2) | 2023.11.03 |
너는 무슨 소원이 있는고? (0) | 2023.10.31 |
네가 통삼대도를 아느냐? (0) | 2023.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