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 450

천하에는 두 성인이 없는 것이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3-2 취곡 오연성, 석산 오희성 하루는 오연성(호 취곡)이 그 일가 희성(호 석산)과 동행하여 사택에 이를 때에 황적동(공주시 반포면)에 저물게 다다르니 동제(도인) 10여 인이 모인지라. 석식 후에 성사께옵서 졸연히 하문하시기를 “어제 저녁에 삼거리에 사는 임병철이 와서 아들 구함을 말하며 폐백 십 원을 올리고 신도안 김시정이 또 아들을 구함에 푸른 콩 한 말을 정성으로 올리니,..

성인의 일을 어찌 범인이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3-1 송해 조용휘, 박우석 조용휘(호 송해)가 대덕군 산내면 침산에 사는 박우석과 함께 성사님을 뵈오니, 성사께옵서 박우석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우석아, 너의 가세가 심히 가난하니 모름지기 한번 산소를 옮겨 보거라. 네 집에 뒤에 한자리가 있으니 전후좌우에 바위가 있고 정혈이 있는 곳에 금잔디가 있으니 즉 너희 집 고추밭 옆이라. 가서 자세히 보면 가히 알 것이라” 하시다. 용휘가..

너희 스승 도덕 자랑만 하여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3 정태용(호 백련)이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모름지기 그 자루를 잃지 말아라. 호미와 쾡이의 밭 매는 기구도 반드시 그 자루를 잡은 연후에야 가히 쓸 수 있는 것이요, 후일에 입도하는 자가 까마귀 떼와 같이 많아서 각층의 인물이 많으리니 장차 어떻게 대접하리오. 오직 너희 스승 도덕 자랑만 하여야 그들이 가히 굴복하리라” 하시다.

‘영위(靈位)’라고 일컬음이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2 정태용(호 백련)이 하루는 하교하시기를 “제례에 거의가 ‘학생부군(學生府君)’으로 벼슬 없는 조상을 쓰나 이제는 필시 그러할 것이 아니요, 또한 ‘신위(神位)’라고 일컬음이 ‘영위(靈位)’라 하는 것만 같지 못한즉 ‘현고영위 현비영위(顯考靈位 顯妣靈位)’라고 쓰는 것이 가하고 조부모 증조부모도 또한 그러하다. 고례는 아버지를 서쪽으로 어머니를 동쪽으로 영위를 정하였으나, 이후로는 아버지를..

대성사부님께옵서 승하 하시시(6)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계유년(개도60년 1933년) 10월에 성사의 명으로 정공의 불상을 조성하여 백옥사에 봉안하니라. 갑술년(개도61년 1934년) 4월에 태용이 자금을 벌어서 대법당을 세우고자 강원도 통천 사람인 김원범과 함께 금화에서 금광을 하다가, 6월에 오른쪽 눈을 상하여 돌아왔으나 눈의 통증으로 인사를 살피지 못한지라. 성사께옵서 태용을 위로하시고 또 염려하시어 하교하시기를 “네..

대성사모님께서 승하하시니(5)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신유년(개도48년 1921년) 9월 7일에 성사께옵서 또 다른 사람의 무고를 당하여 청주 경찰서에 갇히게 되시니, 태용 또한 모시고 가서 함께 갇혀 심한 고문의 형벌을 받고, 10월 5일에 검사국으로 넘어가서 태용은 나흘 먼저 석방되니라. 태용이 매일 형무소에 출입하며 사부님을 뵙옵고 또 변호사 김병하에게 위촉하여 성사님을 변호하게 하니 수당금이 150원이라. 10월 ..

하늘이 정한 연분을 아느냐?(4)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이듬해 임자년(개도39년 1912년) 9월 10일에 동지공(대도존사, 명 문유. 성사 부친)의 상사를 당하시니라. 이때 왜정 경찰이 날마다 와서 조사하고, 태용은 사세로 인하여 남의 집에 고용 생활을 한 지 4년이라. 때에 오취곡(명 연성)이 질녀 혼사로 성사께 고할 새, 백남이 자부로 삼고자 하니라. 성사께옵서 하교하시기를 “너희들이 능히 하늘이 정한 연분을 아느냐?..

충청도 계룡산으로 남천포덕 (3)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일찍이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살 때 경술년(개도37년 1910년) 3월에 성사께옵서 다시 남쪽으로 옮기실 뜻을 결행하심에 정공이 곧 동행하고자 하여 가산을 방매하여 수천금액을 장만하고 두 집의 가족들이 밤중에 길을 뜨니 모두 20여 인이라. 4월 8일에 비로소 충청도 계룡산 아래 백암동에 당도하여 수 칸 집을 사서 합하여 동거하니, 그때 가옥 매매 흥정과 입..

만고 대성인이심을 아시고 (2)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일찍이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살 때 무신년(개도 35년 1908년) 4월에 성사께옵서 남쪽으로 길을 떠나셨다가 금화(고을 이름)에 이르러 도로 회정하시고, 12월에 성사께옵서 하교하시기를 “예전에 유, 관, 장 세 분이 도원에서 결의하여 한(漢)나라를 바르게 세웠으니, 우리도 또한 결의하여 천하에 포덕하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시니라. 태용이 명령을 받..

대성사부님의 득도 (1)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1 정태용(호 백련)이 일찍이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살 때 대성사부님으로 더불어 여러 대를 같은 동리에서 살았더니, 병오년(개도 33년 1906년)에 대성사부님께서 득도하신 이후부터 백련의 부친 정공(명 재기, 호 장령)이 항상 마음으로 존숭하여 날마다 추종하여 공경하고 높이되 고향 사람들은 알지 못하더라. 그해 10월에 사부님의 가르치심을 좇아 그 모친(양천 허씨, 호 장동)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