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기대하는 마음

정성(精誠)으로 일관된 믿음 -(2)

인월산(仁月山) 2018. 2. 10. 05:00

금강대도  계간 소식지 "성경" 지에 "대종법사.대종덕사"이 기고한 글을 모아 법문집(法文集)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으로 출판된  글을 창간호 부터  46호까지 연재하여 글을 계재합니다. 

(제 1장 개도 121년 -125년 (서기 1994년 ~ 1998년). 2장  개도 126년-130년 . 3장 개도 131년-135년 . 부록)



            정성(精誠)으로 일관된 믿음 -(2)



천지(天地)에 대한 두려운 마음은 없고, 자연의 섭리에 대한 오묘함도 무너뜨리고, 오로지 정복이나 도전만이 이 시대의 살아가는 유일한 목표로 자리잡아가는 현실에 어떻게 참다운 도덕의 세계, 대동(大同)의 세계를 열어 갈 것인가?

만법(萬法)을 설()하고, 금강삼대보훈(金剛三大寶訓)의 절제된 심성으로 금강십계율과 금강실행십조를 삶의 지표로 세우고, 계율을 실천궁행하는 삶을 살게 하는 길이다.


이제 산업혁명이니 과학문명이니 선진국이니 하며 끝없는 도전으로만 치닫던 대열 속에서 소수의 사람들은 이제 이 길이 아닌데 하면서 환경운동이니 녹색운동이니 하면서 자연보호차원의 게몽을 부르짖고 있다.

옛말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제 중생사이에 단()을 내리시고 진애(塵埃) 세계에 출세하셨듯이 도덕과 윤리의 법강을 세우러 떠나야 할 것이다.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잡아먹힐 수도 있고 살점이 뜯기고 사지가 잘릴 수도 있는 어려운 난관이 도사리고 있어도 도덕적으로 혼탁한 사회의 가치관의 변화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종교인, 나아가 금강. 연화대도인이 선도포덕(宣道布德) 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요즘 TV에서 흥미와 오락만 치닫고 그저 일회용의 알팍한 인기물이 프로에 식상하던 시청자의 요구에 부합해서인지, 앞에서 열거한 모든 잃었던 도덕적 양심(道德的 良心)의 부활에 목말라있었던지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에 시청률이 심상치 않다. 좋은 현상이다.

그저 보는 것으로 끝나는, 듣고 실천하지 않는 시청자들의 일시적인 재미와 흥미일지라도 그 프로를 보는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오늘의 현실이, 지금의 사회가 인간들의 사고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에 공감하고자 노자 도덕경의 무위자연에 동요하는 것이다.

그 서두에서 말하기를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의 문제는 정치만의 문제도 아니요 교육만의 문제도 아니요 경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매스컴 전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매스컴의 창조적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도덕적 구심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라고 명명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디 도덕적 구심체가 강의가 설교로만 되겠는가? 심성수련과 올바른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며 삶 속에서 바른 정도(正道)를 걷는 실천이 중요함을 강의에서 얻을 수 없는 허점인 것이다. , 지식의 한 분야의 인기몰이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로 끝나지 않을까하며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제 위에서 열거한 모든 현실이 결코 남의 세상일이 아니고 이 시대의 문제이며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문제, 내 이웃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볼까 한다.

 

대도덕성사건곤부모님을 모셨던 그 시대의 의성제자들은 얼마나 힘드시고 어려우셨겠는가?

시대의 현실과 어려운 속에서도 의성일관 제자의 도리로 대도성사건고누모님을 모신 모체(母體)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성(精誠)’인 것이다.

 

              다음 2부에 연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