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도성훈통고 (道聖訓通攷)/영험기(靈驗記). 禮편

미륵대불이 인연이 있는 제자를 찾으시니

인월산(仁月山) 2020. 7. 7. 06:51

도성훈통고 예(禮)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영험기(靈驗)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禮편. 3- 205

임종수 (호 초성)가 말을 하니 일찍이 오창에서 거주함에 아버지는 수호요, 어머니는 전주 이경단이라.

3남 2녀를 두어 부유로와 다복했던 가정이 잔혹한 6. 25병란을 지나고서 나라가 어지러워 약국과 의사가 없는 때에

알 수 없는 병으로 남편을 사별하고 얼마 후에 열 살 된 둘째 아들이 죽게 되니 슬픔이 다 그치지 아니하여 8세 된

막내아들이 또 죽음에 마음을 붙들지 못하고 환장이 되어 밤잠과 식음을 전폐하는 중에 장차 이 큰 자식 종수마저도

반드시 죽음의 문에 이름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심란하여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중에 어느 날 꿈속에서 아랫

마을에 많은 사람이 모여 노는 집에 가서 함께 어울리는데 윗동네의 우리 집에 불이 급하게 솟구쳐 뻗침에 천지가 다

빛나고 열기가 심히 넓음이라. 가옥이 전소되어 기우러 자빠지는 중에 온 시골의 많은 사람들이 다 놀래어

“저 집에 큰일이 일어났다” 면서 긴 탄식을 금하지 아니함이라.

이와 같은 중에 의관이 정제한 대불大佛이 여러 선관仙官들을 인솔하고 왕림하셔서 수백 보의 먼 거리에서 오른손을

내미니 그 손은 불이 성한 쪽으로 닿음에 홀로 서서 우는 종수를 싸서 꺼내시어 동네 속 큰 마당에 놓아주시는 중에

꿈을 깼다. 이튿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분명히 스님과 같은 귀한 사람이 반드시 우리 집에 올 것이니 기다려 보자” 하시고 학처럼 머리를 내놓고 기다리는 중에 황혼 역에 이르러 촌사람 같은 이원광 부인이 우리 집에 오시여 여러 가지 도담을 하던 끝에 “충남 계룡산 근처 금화산 밑에 옥화촌에서 념념존성으로 억조창생을 구제하시는 미륵대불이 인연이 있는 제자를 찾으시니 이같이 좋은 때에 입도를 해라”하고 그곳은 천상백옥루와 같아서 성현군자들이 많으니라. 이어 좋은 말씀을 하심에 어젯밤 꿈속의 일로써 대답하니 머리를 끄덕이며 신이하게 여기면서 입도수속을 받음에 다 예를 갖추고 다음번 총회부터 도보로써 금천을 왕래하였다.

도성사부 계실 때에 군대 영장이 나와 금천에 들어가서 사부님을 뵈오니 말씀하시기를 “지금 시국이 지극히 어려운 때이니 먼저 내 몸을 공경하고 항시 금천의 대성사부모님을 생각하고 비록 이 어렵더라도 홀로 계신 어머니한테 편지를 자주 하라” 고 하셨다. 그 후 1년 만에 제대하여 8월에 금천에 들어가서 보니 사부님께서는 이미 5월 달에 승하하시어 제자들이 항시 복을 입고 있었다. 그 즉시 모친이 복을 마련해주시여 능히 복제를 갖추었다. 몇 년이 안 되어 도성사모님께서 또 열반하시니 제자들이 중복 제를 갖춤에 저희도 참여하여 전. 후 각 3년으로써 사제간의 중한 의리를 다하였으니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함에 어찌 그 당시 상황을 지금에 이르러 감히 잊겠는가!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다.

성은성덕으로 안동 김진태의 녀 영숙(호 연홍)을 짝으로 맞음에 처음에는 고통이 있었으나 그러나 자손을 잘 두고 근검 성실로써 가정이 일어났다. 초강 임만진이 당숙으로 항시 종중대소사를 협의하였고 또한 내가 하여금 입도 시키어 대도 신앙을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