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6. 197p
김규선(호 벽지)이 을유(1945)년 4월에
서울로부터 조치원 신흥동에 이르러서 도성사부모님을 배알하니 사모님께서 기쁘게 맞아들이어 점심 죽을 하사하시어 배고프고 목마르던 차에 달게 먹으니 사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금現今에 식량을 구할 수가 없느냐?” 하시사
빨리 대답 드리고 나와서 음성읍 용산리 본집에 이르러서 도인 김종대, 김태제, 김태용, 김일제, 우인득으로 더불어 사방으로 도모해보았으나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서 하늘을 바라보고 한숨 쉬고 있을 새,
누가 말하기를 “김종대의 고모님 댁에 가면 가히 구할 것이라” 해서
다시 김종대, 김태제로 더불어 천안 서당리에 이르니 쌀은 없고 다만 보리쌀 한 섬이 있어서 세 사람이 그 보리쌀을 사서 나눠지고 조치원 사택에 이르러서 저녁 죽을 먹고 자려고 할때에
도성사부님께서 외지에 행차하셨다가 돌아오시어 말씀하시기를
“세상사람들은 되 곡식을 가지고 숨어 다니거늘 너희는 섬곡식을 지고서 낮에 다니느냐?
일본 순사들의 눈이 이같이 삼엄하거늘 어떻게 그 겁이 없느냐?
착한 사람은 비록 감화를 받음이 있으나 주의하는 중에 하늘과 땅의 감화가 있을 것이니 머무르지 말고 속히 가거라.”
세 사람이 배례를 올리고 역 대합실에 나가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차를 타고 각각 고향 본집에 이름이라.
뒤에 들은즉 세 사람이 떠나가고 사부님도 또한 뒤따라 나오신 후에 본 지서의 순사 10여명이 별안간 난입하여 집을
수색하였으나 사모님의 성스러운 인품과 어지신 슬기로 그 순사들이 무사히 그냥 돌아가면서 말하기를
“분명히 무엇이 있을것 같은데 이상하게 없더라”하니
만일 그때에 사부모님의 미리 알고 계신 큰 처방이 없었더라면 어찌 스승과 제자가 화를 당함을 면하랴?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이 눈에 삼삼하며 귀에 쟁쟁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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