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24
양영분(호 적단)은 일찍이 이장춘이 금천에 갈 것을 권함으로써
시부모님께 친정 다녀올 것을 고하고 집을 나와 사방을 돌아보니 사람이 없었다.
다른 길을 가려 방고개를 넘으니 우리 동리와 청주와 진천 도인 15명이 이미 와 있었다.
마침 상여(행여)가 나타난 고로 머리를 굽혀 숨을 곳을 찾았다.
길이 멀어 다리가 아팠으나 처음 가는 길 가운데 신발이 떨어지면 시아버님의 염려가 있어서 사람이 보지 않을 때는
신발을 들고 볼 때는 신발을 신으니 녹죽부인이 말하기를 “신발은 중하고 발은 중하지 않느냐?” 하였다.
신탄을 지나 산과 들을 넘어서 가고 감에 나무와 돌에 많이 걸리었다. 백중재를 어렵게 지나서 기울어져 가는 집 제 7
선화부에 도착하니 등불이 깜빡깜빡하여 밝지 아니하며 모기떼가 자주 살을 물어뜯음이라.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거늘 원장이 배례 갈 것을 말하여 가보니 짚신을 신은 남자와 여자들이 다 노독으로 말미암아 얼굴 등이 누렇게 떴으나 배례하고 선화부에 돌아와서 도토리 밥과 토란국을 달게 먹고 도담을 듣고서 좋은 생각에 모름지기 더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었다.
남편이 없고 아이가 어리며 시부모를 모시고 삶에 만일 믿음이 있으면 마음에 의지가 되어 금천에 이따금 가니 하루는 시모님이 식량 항아리를 엎어높고 말하기를 “아이들은 내가 키울 것이니 나가거라.” 하시어
잠시 격정을 피하여 몰래 담을 넘어가서 나뭇간에서 자고 이른 새벽에 아침밥을 하고자 해서 쌀이 있는 곳에 들어가니 시모님이 큰 소리로 격정하여 땅에 앉아 한없이 우니 시누이와 시동생이 면박과 업신여김과 욕을 주었다.
어느 해 엄동설한에 직장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근전으로 더불어 조치원에 도착하니 차가 없었다.
날이 추워 손을 불고 발을 구르더니 마침 석탄을 실은 큰 차가 와서 쉬고 있는 고로 물어보니 운전기사 말하기를
“차가 고장이 생겨 수리하여야 하며 또한 물건을 많이 실어서 타지 못한다”고 할 새
간곡히 부탁하니 기사가 마지못하여 타라 하여 석탄위에 올라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서로 끌어안고 오는 중에 찬바람이 몸에 들어오나 만법교주를 부르면서 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의복이 다 탄가루가 묻어 보기가 흉하였으나 죄송함을 무릅쓰고 배례하고 집에 돌아오니라.
내가 직장으로 인하여 밤과 일요일을 이용하여 금천에 왕래할 새 하루는 총회를 보고 집 근처에 다다름에 아직 해가 남은 고로 집 뒤 소나무 아래에 숨어서 어둠을 기다림은 시어머니 눈을 피하고자 함인 고로 밤이 되어 집에 들어가서 시모님의 격정을 많이 들었다.
내가 돈을 벌어서 마음대로 쓰고자 해서 직장에 나가니 성례금은 물론이요 각종 사업에 참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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