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32-2
이경무(호 송강)는 뱃속 도인으로 신사(1941)사변 후에
(2) 일본이 신사사변을 자행하여 대도를 탄압함에 금강도인들은 바람앞의 등불로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졌다.
일본 정치가 우리 민족을 말살하고자 하여 만주 이민을 추진하고 청장년 무리를 몰아가서 징병, 징용에 충당 되었으며 청장 소녀들을 유인하여 정신대로 일본 군대에 편입하였다.
이때 도성사부님은 금병산 후록 밤절을 정하여 구의사와 변만규와 나(경무)로 하여금 토굴을 만들어 비밀히 거주하시다가 어느 날 새벽에 일찍이 아침 찬을 마치고 충북 낭성면 삼산리 두문동 최익붕(호 노하) 댁에 자취를 감추시니 오직 몇 사람 외에는 무릇 완전히 아는 자가 없었다.
8.15(음력 7.7)해방이 되어 개문동(옛적에는 두문동이라 함)을 떠나시어 금천에 환차 하셨으나 잡초가 빈터에 무성하고 도인 호수도 많이 줄어 염불 목탁의 소리도 들림이 없었다.
사부모님께서 모름지기 삼종대성전을 재건하고자 해서 단체원 50여 명을 결성하여 각각 재질에 따라 돈 버는 일을 힘쓰니 자나 깨나 잊지 못할 대도요, 앉으나 서나 금전(돈)을 염려함으로 꿈속에서 스승을 만나는 날은 금액이 스스로 들어왔다. 나 또한 참여하여 이 같은 신묘함을 많이 증험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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