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도성훈통고 (道聖訓通攷)/수행기(修行記). 信편

정녕히 가르치심을 어찌 감히 잊으랴

인월산(仁月山) 2021. 9. 29. 14:17

일제식민지, 6. 25 전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修行)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30

유태석(호 운록)이 9살 때에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이끌고 공주군 정안면 사현리 정 많은 고향을 떠나 동쪽 집에서 자고 서쪽 집에서 얻어먹다가 공주 경천의 노루목 다리 외딴집 근처에 이르러서 또 어머니와 동생을 이별하고 천원군 수신면 엄정리 홍만표의 집에

가서 머슴이 되어 얻어먹을 당시에 행실이 곧으며 마음이 굳고 여력이 보통사람에 지나서 사람이 다 녹두장군이라 이름이라.

그 동네 사는 도인 장운규와 그 아내 초광의 권유로 입도하여 자주 성화를 듣고 단신으로 금천에 들어와서 양재희와 이창승(호 하담)이 선화부를 책임지고 있을 때에 나무 해오고 물 길어오는 역사를 담당하였고 과거 왜적의 노예 김갑순 일당이 건물을 훼철하고 주춧돌과 기와 등을 이끌고 가다가 축산 앞 냇가에 버려놓은 큰 주춧돌 등을 저와 정헌창 외 삼인이 닷새 동안에 지게로 다 운반하니 현재 삼종대성전(보광전)안 계단석과 축대석 등이 이것이니 원래 그 돌은 넓고 큰 것인데 석공들이 재단하여 사용한 것이며 이보다 먼저 삼종대성전을 황학동에 봉건함에 동학사 후편 계룡산 상봉의 목재를 구매하여 수백명이 지계로 운반할 새 하루는 기둥과 대들보의 목재를 지고서 상봉으로부터 내려와서 황학동 청운교 근처(임시 사택이 있던곳)에 이르러서 짐을 내리는데 소나무 목재 한 개가 날아 튀는 순간에 몸을 피하여 화를 면하였거늘 도성사부님께서 모시고 다니는 제자로 더불어 지나시다가 이 광경을 보시고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큰일이 일어나지 아니한 것이 다행이로다. 몸을 상함이 없느냐? 작업을 신중히 하라“ 하실 새

이때 인자하신 모습과 성스러운 말씀으로 정녕히 가르치심을 어찌 감히 잊으랴”

제가 일찍이 부모와 동생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어진 선생님한테 나가 비록 학문을 닦지 못하였으나 총명하여 한 번 들으면 잊지 아니하고 부지런하여 일을 보면 쉬지 아니하며 사람을 만나면 고담 들려주기를 즐기고 물건이 있으면 심히 남한테 베풀기를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다 이르더니 성문에 들어온 후에 도성사부님 교화를 많이 듣고서 일찍이 한글을 깨닫고 말하기를 “내가 큰 성인을 만나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사람이 되었겠는가!” 하고 성실함을 변하지 아니할 새 변익규(호 함춘), 변이규(호 석발)형제가 육촌 여동생(변영규. 호 향지)을 중신하여 혼인을 이루어 세 아들과 세 딸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