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성훈통고 성훈기 智편. 4-9. 23p
김도현(호 취사)이 개도 77(1950)년 정월 1일 이른 새벽에
(1)도성사부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경인(1950)년을 교화실 흑판에 쓰게 하시고 또 ‘놀랄 경(驚),’‘해 년(年)’자를 먼저 쓴 글자 아래에 쓰게 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돼지라는 것은 가두어 기르는 짐승이니 울타리를 벗어나면 위험하고 벗어나지 않으면 편안한 것이라”하시니라. 동년 양 6월 25일 새벽에 뜻하지 않은 남침이 시작되어 동족간의 상잔으로 금수강산은 초토화가 되고 남녀와 노소는 실향민이 되었다. 사부님은 급히 직원회를 여시고 말씀하시기를 “도인들은 변심하지 말고 잘 믿을 것이며 망동하지 말고 몸을 삼가라” 하시고 민족의 희생을 염려하시어 삼종대성전에 기원하시며 구내에 청장년들을 소집하여 남쪽으로 내려가게 하실 새 직원들이 사부님께 고달 드리기를 “전세 나날이 불리하여 도장이 또한 위험하오니 남하하여 피난함을이 어떠하오니까?”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그와 같이 불안하거든 남하하라”고 하사 직원들은 준비하고 출발할 것을 고달 드리니 걱정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식구가 수십만 명이 되거니 마땅히 가고자 한즉 함께 가야 하니 어찌 다만 이 구역에 사는 자만 생각 하느냐?”하시니라. 전국 각지에 피난민이 이 성역 가운데 구름처럼 모임에 배고픔에 허덕이는자, 병들은 자, 부상된 자들을 사부님께서 일일이 찾아 위문하시고 격려하시기를 “여러 가지 난관을 잘 극복하여 만일 참고 견딤이 있으면 오래지 않아 좋은 소식이 올 것이니 여기에서 피난하고 귀가하면 얼마나 좋으냐?”하시니라. 또한, 지방도인들의 안위를 크게 염려하시고 하여금 위원문을 출장케 하시니 때는 미군이 금강 방어 작전에 실패하여 후퇴하였다. 치열한 전투가 곳곳마다 진행됨에 무수한 희생이 속출하고 검문검색이 시행되어 철통 같은 격전이 정히 이 금강 이남 지역이거늘 어찌 이 전쟁 마당을 통과해서 사부님 존의를 심성자매형제에게 전달하랴! 그러나 일행이 전화 속을 뚫고 사경을 넘어서 각 지방에 도착하여 성사부모님의 뜻을 전달하고 무사히 귀환하니 감성리(현 세종시 금남면) 사는 김득규 노인이 말하기를 “당시 밤중에 천상의 섬광이 일직선으로 금천 성역에 꽂혀서 간간이 이어졌다”하니 대성인의 신묘한 계책과 성스러운 덕화는 천지와 같으시사 가히 생각하여 의논하지 못하고 능히 이름 할 수가 없으시되 참으로 믿고 따르는 자는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구원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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