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훈기(聖訓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성훈기 智편. 4-46. 91p
여원현(호 구연)이 6.25군사 난리에
(1)충북 영동군 양강면 쌍암리에서 피난하던 중에 조카딸 정숙이 배고픈 끝 무엇을 잘못 먹어 식중독이 생기어 수개월 고생으로 점점 병이 깊어 밤에 한쪽 눈을 쓰지 못하더니 병이 더욱 성하여 두 눈이 완전히 밝지 않음으로 해가 가고 달이 감에 여러 총회를 그냥 지나니 이때 교통량이 좋지 못해서 맨 걸음으로 300여 리를 왕래함에 금강개도 성탄절 총회(19일)에 참여하고 21일 길을 떠나서 늦은 밤에 집에 이르니,
어머니(이춘와)가 말씀하시기를 “원현아! 비록 죄송스러운 일이오나 도성사부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거늘 어찌 이 그냥 왔느냐?”하시고 애석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실 새,
고하기를 “참으로 이 죄송합니다. 대개 이 성탄절 총회에는 바쁜 일이 많음에 저의 개인적인 가정사를 고달하는 것이 진실로 도리가 아닐 것 같아 오늘 그냥 돌아 왔으나 내일 다시 가서 모름지기 사적인 일을 품고하여 하회를 받아 오겠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비록 이 황송한 일이지마는 여기가 일, 이십 리 거리가 아니며 왕복 300여 리가 넘으며 삼복더위가 극진히 높거늘 어떻게 재차 먼 길을 갔다 오느냐?”
고하기를 “심려를 하지 마옵소서! 더위와 다못 먼 길이 절대로 구애가 되지 않고 다만 이 죄송할 따름이라”하고 26일 6시경 출발해서 탄동을 지나 금병산 고개를 넘어 맑은 샘에 이르러 점심밥을 먹고자 해서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니 날 더움을 견디지 못한 보리밥 쉰 것이 극히 고약한 냄새를 발해서 맑은 물에 여러 번 씻어서 주린 배를 채우고 부지런히 성전에 와서 배례하고 선화부에 들어가니 박병직(화계)이 깜짝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기쁘게 맞이하기를 “이 어찌함인고? 어제 돌아간 사람이 오늘 또 나타났으니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발걸음을 중간에서 돌이켰느냐?” 하고 걱정을 놓지 않으실 새 여차여차 함으로 감추어 대답하니 무릇 거짓말함으로써 인정하고 완연히 믿지 아니하는 것 같음이라.
보명,보찰 하는 조인구, 김도현 두 사람에게 두 번째 온 이유를 상세히 말하고 이튿날 아침 문안 석에 들어가니 도성사부님께서 미소를 주시어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또 왔는고? 집에 별다른 연고가 없는냐?”빨리 대답하고 솔직한 말씀을 올리니 말씀하시기를 “그 말을 다 들었으니 모름지기 더 말하지 마라. 먼 길에 몸이 얼마나 대간하냐? 푹 쉬었다 돌아가거라!”고하기를 “아직 어렵지 않습니다마는 오늘 물러가고자 하옵니다.”또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너의 마음대로 행할 것이나 잠시 의료부에 들어가서 장동(한경구)한테 약을 받아가서 이렇게 할 것”을 이르시사 곧 가서 받아보니 약 3첩의 분량이 적음이 되지 않으니라. 집에 돌아와 성훈을 받들어서 솥에 삶아 자주 그 물을 먹으며 산에 나는 명과 열매와 다못 흰쌀을 끊여 자주 두 눈을 씻고 피마자 줄기와 박속 한줌을 구하기가 쉽지 아니하였으되 어머니가 여러 사람에게 말을 전해서 여담곡과 배황단 부인이 구해 와서 달여 먹은즉 구름 걷힌 푸른 하늘처럼 싹 나으니 보는 자가 놀라고 듣는 자가 칭찬함이니 성시에 구름이 열리니 밝은 달이 만 리에 빛난다 함을 이 이름이라. 그 아이가 이처럼 성은을 입어 병 없이 장성하였다. 우리 도성사부모님께서 알아듣게 이끌어 주시고 화하신 얼굴로 직접 명하신 큰 은혜와 큰 덕은 가히 이루 말할 수가 없도다.(수행,인술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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