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33
이배춘이 신사왜변 (1941년) 당시에 이재승(호 향하)을 입도시키어
논 여덟 마지기를 팔아서 희사한 연고로 왜경이 이재승을 체포하여가니 이재승이 나를 불러서 대전에 가니 왜경이
이르되 ”조사 서류가 미미한 고로 다음에 오라“ 하여 집에 돌아가서 수일을 지나니 또 호출함이 있으되 나가지 아니한
고로 비가 오고 흐린 날에 본 면 순사가 와서 체포하여 간지라.
하룻밤을 그 지서에서 지나고 아침이 되어 큰 아들(이충진)이 와서 손에 돈 삼십 전을 쥐어주고 울면서 집에 돌아간지라. 온양으로 옮겨가서 또다시 대전으로 넘어가서 억지로 취조를 받을 새 도무관계를 심히 심문하나 알지 못함으로써 대답하니 그 왜놈이 손과 발로 때리고 걷어차면서 고문하다가 문밖으로 끌어내면서 말하기를 ”5일 후에 오라“ 하여 내가
말하기를 ”조사를 다하면 내 스스로 갈 것이라“ 하니 그 사람이 성난 눈을 크게 뜨고 강제로 문밖으로 끌어낼 때에 운봉(김창희)장이 집에 돌아감이 마땅할 것 같다 하여 그날 집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지서 안을 돌아보니 도성사부님의 초췌한 얼굴과 수척한 모습은 가히 형상하여 말할 수가 없음이라.
그때에 내 딸과 함께 나옴에 많이 맞아 눈이 붓고 다리는 절름발이가 되어서 걸음을 걷지 못함이라.
간신히 탄동(숯 골)까지 와서 머리를 들고 금병산 고개를 바라보니 가히 넘어갈 수가 없는 고로 땅바닥에 앉아 탄식하고 방황하다가 길을 잃음에 어린 학생 두 사람이 마침 산에서 내려올 새 체면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정을 애기하고 말하기를 ”내 어린 딸을 업어다가 산위에다가 내려놓으면 반드시 학용 비를 주리라“ 하니 두 학생이 의논하여 말과 같이 행해서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돈 십오 전을 줌이라.
딸을 업고 산을 넘어서 큰댁에 도달하니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말씀하시기를 ”요사이 고생이 많도다!
대개 괴로움이 있은 연후에 달콤한 즐거움이 있다“ 하시고 밥을 내주시고 먹을 것을 권하시니 염치를 불구하고 밥을 맛있게 다 먹고 집에 돌아간지라.
그 후에 저와 임추광이 도성사모님과 함께 유치장에 있었고 왜경이 사부님을 체포하여 갈 때에 함께 모시고 있었으며 사부님이 조치원에 계실 때 밤중에 배알함이 있었고 또 길 위에서 배알함이 있었음이라.
이같이 사부님 이하 여러 제자가 더러운 왜놈들의 손으로 별안간에 체포 구금되어서 모름지기 손과 발로 차고 때림으로써 통하지 않으면 대개 특별한 무기로써 형벌하여 도성사부님은 몸체가 뒤틀리어 오장육부가 어긋나 파상되시고 수족이 다 흉터 되고 온몸이 다 멍들어 검어지심이라. 아프고 아픈지라.
우러러 하늘에 하소연하니 하늘은 말하지 아니하고 구부려 신명에 하소연하나 신명도 말이 없음이라.
그 왜놈 도둑 종자의 큰 죄는 실상 천지보다 크니 하늘도 그 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땅도 그 죄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만인에게 말을 할지라도 사람들이 즐겨 듣지 않을 것이요, 성인 문하에 들어올지라도 문이 스스로 열리지 않을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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