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9-3 녹생 정헌명
왜정 당국이 단발을 장려할 때에 종무소로에서 반대 운동을 하고자 해서 김종갑으로 하여금 노동조합에 교섭하게 하는지라. 헌명이 말하기를 “김종갑이 무슨 권력이 있어서 능히 이 같은 운동을 합니까?” 하고 성사님께 고하니, 말씀하시기를 “종무소에 가서 협의하여라” 하시어 물러 나와 종무소에 말을 하니, 운봉 김창희와 추연 김태희가 응하지 아니하더니 일은 이미 어려워져감에 도리어 당국을 거슬려서 경찰서 순경 십여명이 풍우처럼 달려와서 억지로 늑삭勒削을 강요하는지라.
헌명을 비롯한 고월능, 이창규, 정해권은 불복한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가서 유치된 지 두어달 만에 세 사람은 마침내 늑삭을 당하여 나오고, 헌명은 홀로 여러 성신의 보살펴주심으로 늑삭을 당하지 않고 돌아오니라.
갑술년(개도 61년 1934년) 성사님의 갑년에 종무소에서 협의하여 큰 상을 준비함에 관현악의 악공들과 재주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초청하는 것을 폐하였는데 그 이유는 경제 사정이 안 좋은 관계라.
그러나 헌명이 운봉과 함께 사사로이 의논하여 배우들을 불러들여서 주악과 노래와 춤 등 여러 가지로 축하 의식을 준비하여 개최하니 당시에 관광하는 자가 수천명이라.
금천 주변에 그날 음식점이 50개소였는데 해가 질 때까지 다 팔지 못한 것을 성사께옵서 “다 사들여서 각 선화부에 나누어 주라” 명하시니,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여 칭송하지 않음이 없더라.
헌명이 어느 해인가 섣달 그믐날 밤에 죄송하옵게도 성사님께서 지성으로 가르쳐 인도하심이 하루도 빠짐이 없으시어 하루 저녁만이라도 편안히 쉬실 것을 엎드려 고하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책임을 어찌하겠는가!” 하시고 많은 제자를 불러들여 도를 설법하시니, 그 설법 하시는 성음이 청아하시어 거문고를 타는 소리와 같으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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