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 448

일 년의 농사가 삼 년의 농사가 된다는 말을 아느냐?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9-7 윤창조(호 연타)에게 하루는 성사께옵서 하문하시기를 “네가 일 년의 농사가 삼 년의 농사가 된다는 말을 아느냐?” 말씀드리기를 “소자가 민첩하지 못하니 어찌 알 수 있겠사옵니까?” 말씀하시기를 “장차 일 년의 보리농사로 2년 먹게 될 때가 있으리라.” 말씀드리기를 “한 남자와 아홉 여자의 말을 들었사오니 이 무슨 말씀이옵니까?” 말씀하시기를 “말하기 어려우니라. 간절히 말..

신통한 성인이 아니시겠는가! 진실로 불가사의로다.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9-6 윤창조(호 연타)가 하루는 보은으로부터 들어가 뵈오니, 성사께옵서 하문하시기를 “네가 옥천 원남에서 본 것이 있지 아니하더냐? 중간쯤 오다가 길에서 발을 구르고 앉아서 본 것은 노승예불老僧禮佛(늙은 중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형)이요, 그 아래에 네가 앉았다가 서서 본 것은 무엇인고?” 말씀드리기를 “오공蜈蚣(지네 형)으로 아옵니다.” 말씀하시기를 “가지가 많이 벌리고 당..

능히 독실하게 믿으면 가히 대지 세 자리는 얻으리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9-5 윤창조(호 연타) 또 말씀하시기를 “너의 산판에 한 혈이 있으니 네가 본 뒤 봉우리가 투구봉이 아니더냐?” 말씀드리기를 “이것은 탕건봉이라 이름합니다.” 말씀하시기를 “청룡에 말 등 날이 있지 아니하더냐?” 말씀드리기를 “그 날이 완연히 칼등과 같아서 바위돌이 벌려 서서 줄을 이루어 내려갑니다.”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장군대좌將軍大坐(장군이 앉아있는 형)이니 나가면 장수요..

대성사부님 승하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6-5. 동정 오철수 성사께옵서 만년에 항상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공자는 제자에게 도를 전했으나 나는 아들에게 도통(道通)을 전한다” 하시더니 갑술년(개도61년 1934년) 11월에 이르러 승하하시니라. 남녀 제자들이 부모 잃은 마음으로 지난날 대성사모님 상사 때와 같이 중복 삼년을 하였으나 철수는 무지하고 우매하여 심상 삼년의 복제에 그쳤다가, 성자께서 승통하신 지금에서야 교화를 받아 전날의..

대성사모님 승하후 법당에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6-4. 동정 오철수 정묘년(개도54년 1927년)에 이르러 대성사모님께서 승하하시거늘, 그때 복제가 통일되지 않아 혹은 중복 삼 년을 하며 혹은 삼년 이상 더 입는 자가 있었는데, 철수도 또한 삼 년 중복에 참여하니라. 무진년(개도55년 1928년) 여름에 임태철과 안정호 등이 사부님의 교화를 친히 받아 정의와 인도를 배운 것으로 말하기를 “현재 사모님께서 승하하셨으니 만일 사모님을 법당에 모..

어느 때에 명사가 되겠는가?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9-4 윤창조(호 연타)가 후일에 밖으로부터 들어가 뵈오니, 성사께옵서 하문하시기를 “네가 이번 길에 본 바가 있으리니 능히 말하겠느냐?” 말씀올리기를 “청주산 동쪽에 금반옥대金盤玉帶형(금소반에 옥의 띠를 한 형)의 만대가 영화스러운 길지가 있다고 하는 고로 한번 가보고 왔나이다.” 말씀하시기를 “금반옥대형이 아니라. 네가 이미 서 있다가 또 두 걸음을 내려가서 앉아서 임좌 병향..

가히 두려운 것은 병겁病劫이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9-3 윤창조(호 연타) 하루는 사부님 시좌侍坐하였더니, 조용히 하교하시기를 “지금 일본인들이 비록 저토록 일을 견고하게 하나 장차 눈물을 흘리며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요, 일본인이 간 후에는 각색 인종이 모두 한국에 모이리라.” 이에 여쭈옵기를 “그러면 세상에 병란兵亂이 없겠습니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병란과는 무관하나, 가히 두려운 것은 병겁病劫이라. 각국의 괴질운怪疾運..

도덕가와 진종보감과 현화진경을 내려주심에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6-3. 동정 오철수 임술년(개도49년 1922년)에 세상의 인심에 부응하는 뜻으로 신도안과 금천리(현 세종시 금남면)에서 법회를 열고 건축 사업을 시작하여 3~4년을 거쳐 준공을 보게 되니, 이 동안에 교회 이름을 처음에는 ‘동붕교’라 하고 중간에는 ‘관성교 지부’로 하다가 마침내 ‘금강도’로 이름 하니라. 사부님께서 도덕가와 진종보감과 현화진경을 내려주심에, 철수가 주필이 되어 이것을 3개월..

사람들이 모두 신인이라고 하더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4-9-2 윤창조(호 연타) 성사께옵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강원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 선대 묘를 봐주기를 청하거늘, 내가 허락하고 따라갔더니 다른 묘를 가리키며 그 형의 묘라고 하거늘, 내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묘는 봐서 무엇을 할고?’ 하니라. 또 한곳에 가서 보니 쌍분이 있는데 그곳이 그 선대 묘라 하거늘, 내가 말하기를 ‘한 곳은 물이 광중에 가득하고 한 곳은..

성인의 신령하심은 과연 불가사의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6-2. 동정 오철수 병진년(개도43년 1916년) 2월에 성사께옵서 녹동(현 유성구 구즉동)으로 옮기시니, 철수가 동제 주낙용과 협의하여 논 다섯 마지기를 살 수 있는 돈을 올려드리어, 농사로 소일하시며 거처하여 적연히 지내시니라. 3월에 접어들어 성사께옵서 제자들 집에 방문하는 일로 정골에 왕림하시사 여러 날 머무시니라. 그때 덕지 오희준의 아내 임씨가 실성하여 동제 오태균이 도 믿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