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도성훈통고 (道聖訓通攷)/성훈기(聖訓記). 智편 248

대성경 간행 헌성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31 이상만(호 성탄)이 아버지(호 계월, 이름 영우)에게 들으니 성경 간행 할 때에 금강 연화도인들이 서편 교화실에 모였는데 도성사부님께서 역직원을 거느리시고서 입회를 받으시며 헌성금을 정리하시다가 계월을 부르시더니 하문하시기를 “계월은 헌성을 얼마나 하겠는가?” 그때에 서적 한질 삼십육 권의 가격이 삼천오백 원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한질 가격 정도는 하겠습니다.” 하니 도성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금일의 회는 ..

천지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심이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30 이덕호(경련)가 개도 77(1950)년 5월 21일에 (1)도성사부님께서 17명의 도인을 영솔하시고 대성사부모 존영을 충북 청원군 사주면 용정리(현재 청주)에 봉안하시다. 처음에 사부님께서 오뉴월 삼복 더운 계절과 동지섣달 눈 날리는 추위 속 거센 바람을 불구하시고 수년간 저의(이덕호) 집에 행차하실 새 하루는 터를 보고 마루재심에 좌우 시내 골짜기를 실로써 측정하시고 하문하시기를 “아들이 잘됨을 원하느냐? 딸..

성사의 도덕을 송축할 새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9-2 유태석(호 운녹)이 모셔보니 (2)어느 날은 역직원과 구내 금강도인 연화도인들이 도성사부님을 모시고 합강(조치원 물과 신탄진 물이 합하는 곳)으로 가서 기암과 향내 나는 풀 있는 곳을 정하여 갓끈을 빨고 발을 닦고 배를 동원하여 산에 올라가 호연한 기운을 기르고 물에 놀고 산을 보면서 시와 글의 풍류를 일으켜서 성사의 도덕을 송축할 새 그때 성사의 청아한 음성과 덕스러운 모양에 화한 웃음은 지금도 기억에 생..

국민들이 보리고개에서 벗어날것이며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9 유태석(호 운녹)이 모셔보니 (1)도성사부님께서는 하늘과 하늘이 다함이 없는 큰 효도로 대성사부님 성산을 삼태봉 산기슭에 용마가 구궁팔괘를 진 것 같은 형국의 명당에 받들어 모실 새 저 또한 천여 명으로 더불어 소복에 건과 행전을 입고 일을 하였더니 관을 내릴 때에 채색 구름이 영롱하고 서기가 진진함에 낭랑한 퉁소 소리가 들리는 고로 날아가는 새도 소리를 내며 오르고 내리며 오고 가더라.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사부님께서 승하하심을 듣고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8 유위주(호 영단)가 도성사부님의 도덕은 하늘에 맹세함에 모든 부처 모든 신선이 강림하고 땅에 맹세함에 중생과 만물이 감응한다 하사 병신(1956)년 7월 27일에 처음으로 도성사부님을 뵈오니 사부님께서 글을 풀어서 말씀하심에 ‘각각 신선을 원하고자 하나 신선은 마음 밭에서 찾으라’는 보배스러운 가르침과 ‘보배스런 칼이 갑 속에서 소리하나 누구한테 전할가? 나를 뗏집에서나 볼 것이라’고 하시더니 이후에 문득 성사..

전무후무하신 대효를 말씀하시니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7 오근영(호 지강)이 말하니 (2)도성사부님의 전무후무하신 대효를 말씀하시니 효도로서 대성사부모님을 섬길 때에 나가시고 들어가실 적에 배례 하심을 빠뜨리지 아니하시고 단 맛을 먼저 잡수지 않으시며 반드시 4물(예가 아니며 보지말며,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움직이지 말음)과 5치(살아계실 때 그 공경을 이르고, 봉양할 때는 그 즐거움을 이르고, 병이 나시면 그 근심을 이르고, 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이르고, 제사..

일제의 탄압과 만행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7 오근영(호 지강)이 말하니 (1) 도성사부모님이 항상 죄악을 짓지 말며 많은 착함을 봉행함과 들어간즉 효하고 나온즉 충성으로서 가르치시사 안으로 금옥 같은 도인을 이루는데 급급하시고 밖으로는 선도포덕에 바쁘시더니, 혹독한 왜놈의 마가 36년 통치를 부족이 여기어 세계대전을 일으키는데 미쳐 우리나라 사람 수십만여 명을 보국대 정신대 등으로써 이름을 지어 전부 강제로 몰아 죽을 땅에 집어넣고 구더기와 푸른 파리의 ..

나의 일은 이미 다 하였도다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6 여영현(호 종명)이 교화를 받들으니 도성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자님은 능히 글을 옻칠하여 벽 속에 감춤으로 도를 전하였으나 금강도는 예절도 없고 법도 없는 일본 사람들이 건물을 헐어가고 주춧돌까지 빼내어 갔으며 심지어 족보와 작은 편지 따위를 전부 도적질하여 돌아갔으니 벽속에 감추어 전하면 상하여 이지러질까 두렵고 땅굴에 감추면 썩어서 없어질까 염려되며 공중에 매달고자 한즉 갈고리가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맡..

어느 날에 공부를 이루랴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4 안정애(호 광월)가 10세로부터 양말을 꿰매서 돈을 벌어 성예금을 드리고 금강고등공민학교에서 수업을 함이라. 12살 때에 친우로 더불어 성전 앞마당에서 재미있게 노는데 도성사부님께서 나오시어 말씀하시기를 “편벽되게 놀음에 취하면 어느 날에 공부를 이루랴?” 하시니 그 뒤에 사부님을 바람재 고개에서 만나게 되어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니 사부님께서 깜짝 놀라시고 기쁜 모습으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반갑도다” 하시..

건강을 회복하리라

도성훈통고 지(智) 편은 금강대도 2세 도주(도성사부모)님 께옵서 1930~ 1950년대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의 성적기(聖蹟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훈통고 성적기 智편. 5-22 소명규가 기축(1949)년 4월 다른 곳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신음하시는 도성사부님을 배알할 새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신체가 심히 아파서 피부색이 밝지 아니하고 손과 발이 부드럽지 못하나 이 다음 후로는 건강을 회복하리라” 하시더니 도성사부님 도체후가 과연 쾌유함을 얻으시니 성사부모님은 도로써 몸을 어거하심을 여기에서 가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