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기대하는 마음

‘왜’ 라는 화두로써 해탈의 혜안(慧眼)을 갖자. -(1)

인월산(仁月山) 2017. 11. 28. 10:00

금강대도  계간 소식지 "성경" 지에 "대종법사.대종덕사"이 기고한 글을 모아 법문집(法文集)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으로 출판된  글을 창간호 부터  46호까지 연재하여 글을 계재합니다. 

(제 1장 개도 121년 -125년 (서기 1994년 ~ 1998년). 2장  개도 126년-130년 . 3장 개도 131년-135년 . 부록)

 

             ‘왜’ 라는 화두로써 해탈의 혜안(慧眼)을 갖자. -(1)

 

정축년 새해 들어 처음 발간되는 성경지를 접하면서 ‘왜’라는 화두를 던져 본다.

‘왜’ 새해가 밝았는지?

‘왜’ 성경지를 발간해야 하는지?

‘왜’ 금강대도를 신앙해야 하는지? .........

새해에는 삶의 연장에서 굳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단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계획과 포부를 거룩하게 나열하기보다는 그냥 지나쳤던 저 밑바닥의 해묵은 ‘왜’ 의 덩어리들을 꺼내어 보자.

실체(實體)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미 한번 내려진 결정에 생각과 뜻도 없이 행동반경에 의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각자의 삶이 영위되는 것은 아닐까? 물질에 의해, 매스미디어에 의해 개체의 본질을 찾기보다는 군중의 군락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끝이 없는 ‘왜’를 기피하는 세상, 어제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항상 오늘과 내일만이 존재하는 삶의 질주는 작게는 일상생활에서 크게는 대우주의 오묘한 자연이치에 이르기까지 ‘왜’ 라는 화두를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의문이 나서 직접 해답을 찾고 노력하기보다는 주변에서 내려진 해답을 정답인양 각자의 삶의 답안지에 컨닝을 하는 것이다. 그 시험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줄도 모르고 쉽게 컨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항상 주변의 사물에 관심을 갖고 모든 것에 궁금함을 갖는 것이 인간(人間)과 동물(動物)이 구분되는 척도이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 또한 ‘왜’ 의 철학적 화두(話頭)일 것이다.

이처럼 생각에 생각을 이어주는 끝없는 의문의 실체는 전문적으로 이어져 학문으로 얻어지기도 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철학적 의문은 리(理)와 성(性) 안에서 끊임없는 질문으로 나(我)를 찾는 본질적인 고행과 수련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나’를 찾는다는 것, ‘나의 본체(本體)’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 원력으로써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찾는 길일 것이다. 이것이 곧 깨달음의 길이요 해탈인 것이다.

 

                   다음 2부에 연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