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5-1
(1)박장수(호 영산)가 계미(1943)년 3월 25일에 큰 댁에 양곡이 없어서 자주 조석 끼니를 거름을 접함이라.
내가 양곡을 구하고자 해서 정처 없이 행하여 간 것이 청원군 북면 양곡리 김기석의 동생 장군(강신화 장인) 집에
이르러서 김청구(호 운정)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한 뒤에 청구가 큰댁 안부를 묻기에 내가 말하되 ”큰댁 사정이 곤란하여 이곳에 왔다“고 하니 청구가
매우 놀람을 이기지 못하고 곧 종자 씨벼 한 가마니를 꺼내어 나와 청구는 허월초(변만규 처)를 도와 부지런히 방아를
찧으니 쌀 닷 말이 되었다.
우리 세 사람은 어둠을 틈타 출발하여 걸음을 재촉하여 내려오다가 갑자기 불의에 경찰 검문을 당하니 혼비백산이라.
저 무리들이 쌀을 압수하고 조사를 말지 않는 고로 운정은 두려움을 머금고 벌벌 떨었다.
나는 성사부모님을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말하기를 ”저 사람은 나의 자형인데 명일이 곧 나의 엄친 회갑일이라.
이런고로 자형이 마침 쌀이 있어서 함께 가지고 오는 중인데 만일 압수하고 내주지 않는다면 선생들이 직분에 충성함은 비록 좋으나 우리는 아침상을 이루지 못하게 됨이요, 막대한 불효가 도망할 바가 없다“ 하고
땅에 엎드려 사정을 구함이 두 시간이 됨에 저 무리가 말하기를 ”푸르고 누른 말세에 당신들 같은 이는 참으로 드물다.“ 하고 도로 내주어 받아지고서 한참 오다가 서로 이르기를 ”성사건곤부모님이 아니면 어찌 이 같은 일이 있느냐?“ 하고 조치원 큰댁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니 승광이 문을 열어주어 조용히 들어가 뵈니 도성사부님께서 우레 같은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밤중에 다니느냐?“ 하시고
미소를 머금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정 감시가 심하니 도인 품위를 드러내지 말라.“ 하시고 신음을 금하지 않으시고 자리에 누우실 새 다시 배례를 올리고 각각 본집으로 돌아가니 당시 그와 같은 상황에 약 한 첩을 올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죄송함이 많고 많으니라.
'도성훈통고 (道聖訓通攷) > 수행기(修行記). 信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옥 같은 성훈 중에 청아한 음성으로 (0) | 2021.08.29 |
---|---|
성은과 성덕을 어찌 감히 잊으랴 (0) | 2021.08.27 |
나는 한 사람도 오지 아니할 것을 생각하였거늘 (0) | 2021.08.23 |
대성사부모님의 천지 같으신 감화이시며 (0) | 2021.08.21 |
보고를 구내 암송하니 별안간 (0) | 2021.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