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내, 외편( 內,外編)

그렇지 않으면 천로신분이 하시리니

인월산(仁月山) 2024. 7. 13. 08:13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2-62-4. 봉수 신덕휴

계유년(개도60년 1933년) 2월 총회에 참여 하고자 하여 오다가 소새울(명동)에 이르러 홀연히 앞산에 묘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이상히 여겨 가서 보고 들어가 사부님께 고하고자 할 새 고하고자 하다가 주저하였다.

성사께옵서 하문하시기를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말씀드리기를 “오늘 오는데 홀연히 이상한 일이 있는 고로 고하고자 하나이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무슨 형체를 보았느냐?”

말씀드리기를 “조포란鳥抱卵(새가 알을 품은 형) 같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아니라, 이것은 연소燕巢(제비집 형)이니라. 네가 연소를 아느냐? 이는 연소이나 진혈이 아니니 쓰지 못할 것이라.”

말씀드리기를 “그 산 청룡(왼쪽)에 또 화체花體(꽃 체)가 있더이다.”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잘 보았으나 꽃은 무슨 꽃이던고?”

말씀드리기를 “무슨 꽃인지는 알지 못하고 자좌오향인 것만 알았나이다.”

말씀하시기를 “좌향인즉 아니니라” 하시고 경계하시기를 “이후부터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있거든 절대 발설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천로신분이 하시리니 마땅히 경계하라”하시다.

또 말씀하시기를 “네 조부 산소를 면례 하여라” 하시거늘 곧 이화봉과 의논할 새, 화봉이 묻기를 “가지고 있는 산판이 있는가?”

“종산도 있고 동네 산도 있다” 하니, 말하기를 “반드시 하고자 하면 내가 마땅히 가서 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가서 볼 필요가 없다” 하니라.

덕휴가 강하게 꼭 와주기를 청하니 3월 초에 화봉과 노명수(호 월봉) 두 사람이 함께 와서 종산에 한 자리를 점쳐 말하기를 “비하형飛蛾形(나는 나비 형)이니 속히 발할 땅이라” 하고 “동네 산 가운데에 또 한 자리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용이 득천을 해서 하늘로 날아오는형)이라” 하고,

또 말하기를 “사부님께 고한 연후에 가부를 결정할 것이니 만일 반드시 할진대 모름지기 예폐를 주선해 가지고 오라” 하고 떠나가니라.

덕휴가 송월퇴(명 순복)와 함께 들어가 사부님을 뵈옵고 화봉이 답산한 일을 고하니,

말씀하시기를 “화봉이 외출을 하였는데 오늘은 꼭 올 터이니 기다려 보고 가라” 하시다.

덕휴가 월퇴로 하여 예폐를 올리니, 말씀하시기를 “아직 결정도 아니하고 먼저 예폐를 하느냐? 다만 나가서 화봉이 오기를 기다려라” 하시다.

물러가 선화부에서 기다리니 저녁 후에 화봉이 와서 말하기를 “내가 사택에서 봉수가 온 것을 벌써 알았다” 하고 이에 말하기를 “저번에 그곳으로부터 와서 그 사실을 고하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종산에 있는 것은 비아체飛蛾體 (나는 나비 체)가 아니라 봉통체蜂桶體(벌통 체)라’ 하시고 ‘그 동네 산의 비룡상천형의 자리는 쓸 때가 아직 이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이미 야심하니 내일 아침에 들어오면 마땅히 확증해주리라’고 하셨다” 하니라.

이튿날에 화봉이 사택으로부터 돌아와서 사부님 명령을 전해 말하기를 “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은 아홉 혈에 아홉 여의주라, 9대 동안 한림학사가 나올 땅이나, 아직 시기가 이르니 후일을 기다려 쓰라고 하셨다” 하거늘 덕휴가 말하기를 “동네 산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쓰는 바인즉 미리 무덤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니라.

화봉이 다시 이 뜻을 고하고 와서 전하기를 “사체가 어찌할 수 없은즉 마땅히 재혈해서 쓰되 일자는 4월 1일로부터 5일까지 모두 좋다 하시니 이렇게 알고 돌아가서 준바하라” 하였다.

곧 돌아갔더니 4월 3일에 화봉의 편지가 오니, 대개 5일에 완정完定 하니라.

4일에 화봉과 월봉(노명수)이 함께 와서 말하기를 “먼젓번에 그대가 떠난 후에 사부님께서 재차 하교하시기를 ‘1일부터 5일까지 모두 좋으나 5일이 가장 좋으니 그날로 정하라’ 하시거늘, 그때 곧 사람을 보내어 알리도록 하였으나 벌써 멀리 가서 만나지 못한 고로 편지로 기별했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오늘 나올 때 여기 온다고 고하니 사부님께서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덕휴 조부모의 산소도 급하나 친산이 더욱 급하니 그 아래에다가 이어서 장사 지내게 하라’ 하시니, 그렇게 여러 가지를 주선하라.” 고로 때가 아님을 알고서도 세 위 면례의 일을 하고 이달 17일에 금천에 들어가니라.

화봉이 사부님의 명령을 전하여 말하기를 “그대 집 위선은 이미 잘 거행하였으나 혈이 조금 어겨졌다 하시니 이 마땅히 어찌할꼬.” 말하기를 “후일에 다시 개폄을 하겠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