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대성훈통고(大聖訓通攷)/내, 외편( 內,外編) 287

빈한함을 견디어 도를 닦으면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12 그때 왜정의 치하에 늑삭(勒削: 강제로 머리 깍임)을 강제로 당할 새, 정법사님을 모시고 대전에 나가서 다방면으로 교섭하다가 일이 여의치 않아 즉일로 돌아와 뵈니 밤이 이미 깊은지라. 성사님께서 아직도 취침하지 아니하였거늘 사실대로 고하니, 하교하시기를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시속(時俗)을 반대함이 하나도 이로움이 없으니 세속으로 더불어 미루어 나감이 가하니라” 하시다..

일에는 시운이 있으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10 후일에 성사께옵서 신곡(紳谷)이라고 호를 주시고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호로서 온 세상에 널리 드날리어 천추에 유전하라.” 신곡이 황감하여 고백하기를 “소자가 비록 불민하오나 영원히 잊지 않기를 맹세하리이다” 하니라. 1-2-11 갑술년(개도61년 1934년) 3월 그믐날에 본부로부터 대전에서 강연회를 여실 새, 신곡이 또한 참여하고자 하여 나갔더니, 마침내 강연..

법당이 완공 되니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8 계해년(개도 50년 1923년) 12월에 법당이 완공 되니라. 봉불 예식을 거행한 후에 성사께옵서 개회하시고 설법하시기를 “원근 간 불구하며 한서를 피하지 아니하고 이같이 많이 모이니 가히 참다운 정성이라 이를 것이나,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세운 뜻을 끝까지 불변하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하시고 재삼 경계하시다. 신곡이 말씀드리기를 “더욱 더 반성하여 오직 명령..

90칸의 기와집과 인연 제자들이 많이 있으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6 계해년(개도50년 1923년)에 성사께옵서 금천(현 세종시 금남면)으로 이사하시고 정월 이후로부터 건축 공사를 시작하실 새, 그해 4월 4일에 나가 뵈오니, 성사께옵서 하문하시기를 “네가 능히 목공을 하느냐?” 대답 드리기를 “약간 견습함이 있나이다.”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부지런히 노력하여 큰 장인(목공)이 되어라” 하시거늘, 이후로 슬하에서 가까이서 뫼시고 대도 건..

도로써 세상에 나가더라도 금할 사람이 없으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5 임술년(개도49년 1922년) 11월 28일 신도안에서 봉불 의식을 거행할 때에 나아가 총회에 참석하였더니 성사께서 왕림하시고 모인 여러 동제가 자못 수천 명이라. 봉불 예식을 거행한 후에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세상에는 도로써 세상에 나가더라도 금할 사람이 없으니, 너희들은 진심갈력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사업에 그 때를 잃지 말라” 하시다.

방편을 따라 성심을 다하면 집에서 마음을 닦는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4 성사께서 충청남도 대덕군 구즉면 신동리(녹동)로 이주하신 이후에 신곡이 한 차례 나가 뵈오니,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이때는 왜정의 조사가 심한 때라. 자주 출입하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니, 방편을 따라 성심을 다하면 집에서 마음을 닦는 것도 가하니라.” 신곡이 명을 받들고 물러 나오니라.

가르치심을 청하오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3 후일에 성사께서 이름을 ‘신(新)’ 자로 고쳐주시거늘, 신곡이 배수하고 가르치심을 청하니, 성사께옵서 하교하시기를 “수도지방(修道之方)은 수기방심(收其放心)하여 개과천선(改過遷善)하며 시인포덕(施仁布德)하여 구제창생(救濟蒼生)할 따름이니라” 하시다.

세상의 부귀 빈천으로 마음을 동요치 말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2 성사께옵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향에 있을 때 가세가 극빈하여 콩 한 말과 메밀 한 말로 대여섯 명의 식구가 한 달 동안 목숨을 보전했느니라” 하시고 “이른바 도가(道家)는 어느 때라도 빈한함을 면하기 어려운 이치가 있느니라. 도덕은 빈천한 데서 나고 문장은 곤궁한데서 나오니, 세상의 부귀 빈천으로 마음을 동요치 말라” 하시다.

반드시 백팔 군자가 있으리니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2 신곡 최기양 1-2-1 임자년(개도39년 1912년) 5월 19일에 제자 최기양(호 신곡)이 비로소 계룡산 황적동에 이르러 사부님을 뵙고 입도하니, 성사께옵서 보시고 하문하시기를 “나이가 지금 몇인고? ” 말씀드리기를 “16살이옵니다.” 너는 무슨 소원으로 와서 나를 보는가? 말씀드리기를 “성덕을 많이 듣자옵고 제자가 되기를 원하옵니다.” 성사께옵서 기뻐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좋도다, 너의 이..

너희 스승 도덕 자랑만 하여라

「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1-3 정태용(호 백련)이 성사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모름지기 그 자루를 잃지 말아라. 호미와 쾡이의 밭 매는 기구도 반드시 그 자루를 잡은 연후에야 가히 쓸 수 있는 것이요, 후일에 입도하는 자가 까마귀 떼와 같이 많아서 각층의 인물이 많으리니 장차 어떻게 대접하리오. 오직 너희 스승 도덕 자랑만 하여야 그들이 가히 굴복하리라” 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