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대도 .도덕으로 개화되는 세상.

도성훈통고 (道聖訓通攷)/수행기(修行記). 信편 61

큰 부처님을 믿은 고로 신령스런 신명이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23 안정애(호 광월)는 아버지 안용담 어머니 김해초 슬하에서 출생하여 금천리 느티나무 아랫집에서 삶이라. 50여 년 전에 저의 부모는 금강대도를 잘 믿다가 논산으로 이사 간 후에 대성사부님이 승하(1934년)하시고 어머님이 작은 오빠를 낳고 병으로써 자리에 누우니 초가집의 용마름은 끊어지며 까마귀는 뒷동산에 날아와서 날마다 울고 무당들은 사흘이 멀다 않고 경을 외우되 어머니는 하루에 몇 번씩 저승을 왕래함이라! 아버님은 돈을 잘 벌어서 방 가운데 흩어놓으시고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많은 돈을 함께..

도성사부님께서 승하하심에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22 심순례(호 가단)가 들으니 도성사부님께서 승하하심에 사모님이 사부님께서 평소 거쳐하시던 방에 성위(도성사부님) 모실 자리를 마련하고자 할 새 역직원들이 무릇 삼살과 대장군방으로 고달하니, 사모님이 정색하여 격정하시기를 “신명이 이르되 대자대비하신 도성사부님은 천지의 주인이요, 도덕의 스승이거늘 어느 누가 감히 충沖과 살殺로써 말하느냐? 저 돼지 같은 자로 더불어 일을 하니 너희 사부가 얼마나 시달리고 피곤하였겠는가? 알지 못한즉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안즉 공손하게 스승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가하..

우왕마왕 하더라도 도심을 변치 말고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21 신장석(호 춘수)이 개도 81(1954)년 5월 18일에 대성사부님 탄강 총회에 참여하고자 하여 종일 비가 내렸으나 두 살된 아이를 수건으로 가리고 백여 리를 걸어서 오후 6시에 백중재에 이르러서 잠깐 쉬었다가 걸음을 재촉해서 사택을 지나는 중에 도성사부님께서 뜰에서 바라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비 내리는 중에 고생이 얼마나 많은고! 안방으로 빨리 들어오라” 하시나 의복이 다 젖어 주저하니 사모님이 나오시어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가 너무 젖었구나! 빨리 들어와서 젖을 먹이고 가라” 하실새 황송한 마음..

삼순구식 하는 지경을 지내봐야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20 변철수(호 백사)가 항상 대도성사부모님 도덕을 이끌어서 자손과 세인들에게 말하기를 “잘 닦고 잘 믿어서 죄악을 짓지 말고 덕을 닦는 마음으로써 삼순구식 하는 지경을 지내봐야 이에 가히 참진 자가 될 것이니 생각을 깊이깊이 한즉 비록 누워있고 앉아있더라도 어깨춤이 저절로 나옴이라. 이 세상의 사업이 비록 많으나 도덕사업이 중하고 또 크니 도덕의 주머니에 만 가지의 이치가 갖추어 있다”는 등의 말로 입을 괴롭게 함을 말지 아니하여 낮으로써 밤을 새워가며 하는 고로 도성사부님께서 익히 아시고 칭찬을 아..

성사께서는 도가 우주를 두르시고 덕이 천지를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9-2 (2) 변인수(호 방추)가 말하기를 하루는 간장을 가져오고자 하여 조치원에서 출발하여 밤절로 향하던 중에 금강을 건너다가 물이 깊고 급한 곳에 빠져 몸이 떠서 정신이 없더니 백발도사가 갑자기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인수야 너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사 놀라서 깨어보니 몸이 이미 강 언덕에 있더라. 또 간장을 가져오는 연고로써 밤절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여 영대리 근방 높은 산을 오를 새 멧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올라감에 머리칼이 쫑긋 서고 몸이 떨려서 가지 못하고 잠깐 섰더니 졸연간 ..

이제 천석꾼과 같도다!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9-1 ( 1)변인수(호 방추)가 말하기를 도성사부님이 조치원 신흥동에 계실 때에 사모님이 성광과 더불어 산에 오르시어 눈을 헤치고 나무를 긁어다가 불을 피우심이라. 변인수가 찾아가 배알하고 나무 한짐을 해서 마당에 푸니 보시고 웃음을 머금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석꾼과 같도다!” 하시니라.

천지인의 세 경계가 금강 일색임을 깨닫고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8 배옥자(호 향월, 남편 송향 남용락)가 성재석에 들으니 강사가 말하기를 “하늘에는 금강궁이 있으며 땅에는 금강산이 있고 도에는 금강도가 있으니 물건에는 금강인이 있는데 전해오는 고시를 여러분들이 아느냐? 모르느냐?” 혹자가 말씀드림을 “알지 못합니다.” 하니 말하기를 “산이 구름으로 더불어 하야니 구름과 산이 모양을 분별할 수가 없는데 구름이 돌아감에 산만 홀로 서 있으니 일만 이천 봉우리라” 하며 금강도가 참으로 좋음을 힘주어 말씀하시니 깊이 천지인의 세 경계가 금강 일색임을 깨닫고 또한 만고 ..

얼굴을 뵈오니 큰 부처님이시라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7 배순만(호 동춘)이 35살 때 정유(1957)년 5월 5일에 박해용( 호 석근)이 금강도에 갈 것을 권하여 7부 선화사를 따라 종법원에 들어가니 어떤 한 선비가 묻기를 “무슨 연고로 여기에 왔는고?” 대답 올리기를 “영동으로부터 왔습니다.”하니 도담을 기쁘게 나눔에 그 선비를 따라 올라가서 배례를 올리나 사부모님을 뵈옵지 못하니라. 그날이 도성사부님 탄신일로 뭇 제자들이 글을 지어 송덕하더라. 본원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종법원에 나가니 사부님과 많은 제자가 대청에 있음이라. 들어가서 경례하고 앉..

금옥 같은 성훈 중에 청아한 음성으로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6 배순필(호 황단)이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에서 신앙을 이어옴에 딸 옥례(호 계전)를 데리고 옥화촌에 올 때 화물차가 아니면 종일 맨 걸음으로 와서 중간 도인 집에 기숙하였다. 유성에 이르러 걸어서 금병산 수남리 높은 고개를 넘어 옥화촌에 도착하면 사부님께서 미리 나오시어 반갑게 맞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먼 거리에 노고가 많도다!“ 하시고 야간 교화시에 괴로움을 아끼지 않으셨다. 금옥 같은 성훈 중에 청아한 음성으로 심금을 고둥하시니 이르시데 ”영산에서 약을 캐니 소요하는 곳이요, 고해에서 배를 타니 ..

성은과 성덕을 어찌 감히 잊으랴

일제식민지, 6. 25 전란 혼란의 시대에 스승님과 제자의 수행기(修行記)를 모아 법문집으로 출간 되었으며 , 인류중생 구제을 위해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성성훈통고 信편. 8-15-2 (2)박장수(호 영산)가 갑신(1944)년 봄에 들으니 도성사부님께서 최익붕(호 노하)에게 명령하시었다고하고 ”수월 한철현한테 터를 구하라“ 하셨으며 음성에 사는 탄정과 구의사한테 협조를 당부하셨다 하여 목수 일은 안승룡이 맡고 토역은 운정과 죽촌(선친)이 담당해서 대도의 집을 성립한 것은 도성사부모님이 대성사모님 성갑 치성을 올리고자 하셨으나 한철현이 공적인 것은 잊고 사적인 것을 두텁게 하는 뜻으로써 사부님이 크게 노하시어 이 일을 포기하셨다. 강노암과 기타 도인들이 성갑 치성을 청주 삽작..